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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4
Paraboot
신발의 모양과 상태는 신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중 가죽으로 만들어지는 구두는 특히 착용자의 세월을 담아내는 존재이고 까다롭게 골라야 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겐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구두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신발이 있습니다. 바로 파라부트입니다. 튼튼해 보이는 구두를 만드는 이 브랜드는 생각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 ‘파라부트(Paraboot)’에 대해 소개 드리고자 합니다.
19세기 말,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이조(Izeaux)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레미-알렉시스 리차드(Rémy-Alexis Richard)는 가죽 재단사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모든 것을 배울 만큼 진취적이었고, 항상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길 원했습니다.
레미 리차드는 당시의 구두 제작 시스템은 하청업자들이 공장주들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깨닫고 직접 파리에 방문해 자신이 디자인한 모델들을 선보였고 그의 전략은 성공합니다. 이후 아내 폰테를 만나 파라부트의 전신인 Richard-Ponvert사를 설립합니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며 레미는 군화와 마구간 외에 여러 제품을 고치는 일을 몇 년간 맡게 됩니다. 그는 전쟁 이후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더 나은 공장을 구매하고 더욱 안정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이때 Richard-Ponvert사의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줄 Galibier(갈리비에)라는 상표를 등록합니다.
1926년 미국을 여행하던 그는 고무창을 사용한 부츠를 발견하고 천연 고무 자체의 놀라운 특성을 깨닫게 됩니다. 쉽게 마모되지 않고 오래 신어도 불편하지 않고 유연했습니다. 파라부트 대부분의 신발은 고무 밑창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Richard-Ponvert사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파라부트는 1년 뒤인 1927년에 탄생합니다. 라텍스를 수출하던 브라질 아마존 강의 항구 « Para »와 그가 미국에서 발견한 신발의 형태인 « boot »를 결합한 이름이었죠.
레미의 아들 줄리엥이 회사를 이어받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얇은 가죽과 접착제를 이용해 만든 저렴한 신발이 인기를 끌며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신발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고, 많은 회사들이 제작 방법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이에 회사를 진두지휘하던 줄리엥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접착» 기법으로 제작 방법을 바꿀지, 회사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 받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줄리엥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기존 생산방식을 지키기로 결정합니다. 서서 일하는 업무가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신발을 제작했습니다. 농부, 나무꾼, 양치기, 우체부, 목수, 공예가들은 튼튼하지만 편안한 신발들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죠.
이 선택은 파라부트를 최고의 신발 제작 브랜드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는 건축가나 작업 감독관, 수의사들을 위해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신발도 제작했는데, 이 때 탄생한 신발이 Morzine(몰진)입니다. 1945년 이 신발의 이름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Michaël(미카엘)»로 바뀌게 됩니다.
줄리엥은 가족 사업을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바탕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익스트림 스포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곧바로 스포츠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실용화 신발로써 파라부트 브랜드와 분류되었지만, 1922년 그의 아버지인 레미 리차드가 등록한 상표 Galibier(갈리비에) 제품은 줄리엥의 새로운 목표에 적합했습니다.
스키화를 시작으로 산악과 록클라이밍을 위한 신발도 제작하였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갈리비에는 프랑스와 해외에서 기능화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공장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해준 것은 파라부트가 아닌 갈리비에 였습니다.
훌륭한 제품과 마케팅으로 갈리비에의 성공이 있었지만 줄리엥은 경영적인 측면의 성공은 이끌어 내지 못했고 오일파동까지 겪으며 회사의 상황은 지속적인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1979년 말, 줄리엥은 아들인 미카엘에게 전권을 물려줍니다. 미카엘은 지출의 모든 방면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여파와 다국적 기업으로의 급속 성장, 저조한 신용 문제와 더불어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수출이었기에 달러 및 엔화의 폭락은 큰 타격이었습니다. 결국 미카엘 리처드는 1983년 말, 파산 신청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 법원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고 기각하게 됩니다.
파산으로 인한 재판 중, 미카엘 리처드는 이탈리아 유통업체 ‘WP lavori in corso’ 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이때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남성복 패션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였는데, 당시 남성복의 주류였던 어두운 정장과 드레스 슈즈를 대신하여 트위드 재킷과 코듀로이 팬츠, 터틀넥 스웨터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캐주얼한 신발을 찾고 있었고 WP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미카엘 모델을 이용한 스타일링에 매료됩니다. 자연스럽게 파라부트와 계약이 이루어졌고, 이 계약으로 파라부트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회사의 운명을 역전시켰습니다.
파라부트는 여전히 운동화로 가득 찬 신발장에 변화를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좋은 대안입니다. “buy less, buy better”의 좋은 예시라는 점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파라부트가 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경영적인 위기 등 여러 번의 암흑기를 모두 잘 이겨 낼 수 있었던 기반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작이었던 프랑스 이조(Izeaux)에서 본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100%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태도와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구두 브랜드를 뛰어넘어 프랑스의 유산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들의 신념과 행보에 존중을 표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브랜드들의 스토리와 철학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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